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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크롤러
성공을 위해 영혼을 팔아버린 남자의 이야기이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이상하리만큼 불편했다. 잔인하거나 폭력적인 장면 때문이 아니라 너무 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야망이란 이름의 중독 주인공은 처음엔 그저 기회를 찾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기회는 곧 중독이 됐다. 누구보다 빠르게, 더 극적인 장면을 찍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가 점점 인간의 감정을 잃어갈수록, 카메라엔 더 생생한 뉴스가 담긴다. 참 아이러니 하다. 누군가의 불행 위에 성공이 세워진다는... 인간을 잃어가는 순간의 섬뜩함 가장 충격적인 건, 이 남자가 악당이 아니라는 거다. 그는 단지 성공하려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열망이 어느새 인간성을 먹어 치운다. 감정이 없는 그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언젠가 우리도 그런 얼굴로 세상을 바라보는 건 아닐까 두려워진다. 불쾌한 여운이 남는 이유 영화가 끝나도 쉽게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의 성공은 우리 사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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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일


노예 12년
우연한 후기로 보게 된 영화. 실화라는 말에 더 끌리듯 봤고, 단순히 비극적인 실화를 다루는 역사극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이건 그 이상의 이야기임을 느꼈다. 고통이 너무 리얼해서 불편하고 그 불편함이 나를 끝까지 붙잡았다. 눈을 돌리고 싶지만, 돌릴 수 없는 현실 영화에서 나오는 솔로몬은 원래 자유인이었다. 그가 납치되어 노예가 되는 장면은 말보다 침묵이 무섭다. 채찍질보다 잔인한 건, 그가 아무 죄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현실이었다. 나는 그 장면에서 분노보다 허무함을 느꼈다. 사람의 권리가 이렇게 쉽게 지워질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인간의 존엄이란 무엇인가 이 영화가 대단한 건, 주인공을 영웅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그저 살아남으려 애썼고 그 생존의 시간이 12년이었다는 사실이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실감난다. 그가 견뎠던 건 단순한 육체의 고통이 아니라 자신이 인간임을 잊지 않으려는 의지였을 것이다. 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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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일


올드 머니
겉으로 보기엔 부유한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이 드라마는 그들의 화려한 겉모습 뒤에 있는 결핍을 다룬다. 거대한 저택과 고급 정장, 예술품으로 채워진 방들이 등장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공간 안엔 온기가 없다. 이 드라마는 그 공허함을 굉장히 세밀하게, 마치 숨소리처럼 들려준다. 돈으로는 가릴 수 없는 상처 등장인물 대부분은 돈으로 사랑을 사고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외로워지고, 더 불안해진다. 어느 순간부터 이들의 대화는 거래처럼 들리고, 가족이라는 단어조차 하나의 계약서 조항처럼 느껴진다. 그 아이러니가 참 씁쓸했다. 냉소와 허무, 미묘한 애정 이 드라마가 흥미로운 건 인물들을 완전히 악인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거다. 그들 안엔 여전히 사랑 받고 싶은 욕망이 있고, 그 욕망이 꼬여서 질투와 증오로 변한다. 이런 복잡한 감정선이 이 드라마의 진짜 재미다. 돈을 둘러싼 권력 싸움 속에서도 인간적인 약함이 살짝 드러나는 장면들이 오히려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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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1일


코트 스틸링
이 영화는 90년대 뉴욕의 공기를 그대로 품고 있다. 먼지가 내려앉은 바, 깜빡이는 네온사인, 술 냄새가 스며든 좁은 골목들. 그 한가운데서 남자는 아무 기대 없이 하루를 버틴다. 그리고 우연히 친구의 고양이를 잠시 맡는다는 단순한 일 때문에, 모든 게 뒤틀려 버린다. 무너진 인간의 잔상 행크는 특별히 나쁜 사람도, 선한 사람도 아니다. 그냥 지쳐 있는 평범한 인간이다. 그의 눈빛엔 포기와 체념이 섞여 있고 술잔을 비우는 손끝엔 오래된 후회가 묻어 있다. 이 영화는 그를 구원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무너진 인간이 어떤 속도로 끝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를 냉정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도시다. 모든 장면이 차갑고 불친절하다. 눈부신 고층 빌딩 대신, 낡은 아파트와 어두운 골목이 배경으로 깔린다. 끝내 남는 건 냉소와 허무 모든 게 끝났을 때, 관객이 느끼는 건 통쾌함이 아니다. 그저 허무하다. 행크가 바라보던 뉴욕의 밤처럼 영화는 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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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0일


불사의 약
이 영화는 처음부터 낯설었다. 좀비물이라고 생각하고 봤는데, 정작 가장 무서운 건 좀비가 아니라 사람의 욕망이었다. 영생을 얻기 위해 사람들이 점점 인간성을 잃어가는 과정이 나는 좀비 보다 더 섬뜩했다. 생명을 연장하려는 사람들, 멈출 줄 모르는 욕망 약을 손에 넣은 사람들은 처음엔 모두 같은 말을 했다. “이제 두려울 게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얼굴엔 기쁨 대신 공포가 스며들었다. 죽지 않는다는 건 결국 끝나지 않는 고통을 의미했다. 한 사람씩 미쳐가고, 서로를 경계하는 모습이 잔인하게 현실적이었다. 좀비보다 인간이 더 무섭다 불사의 약이 만들어낸 건 죽지 않는 육체지만, 이미 영혼은 썩어 있었다. 몸은 살아 있는데 마음은 무너진 사람들 그 아이러니가 이 영화의 핵심이었다. 결국 살아 있다는 건 단순한 생명 유지가 아니라, 감정과 기억을 함께 간직하는 일이라는 걸 보여준다. 어둡지만 철학적인 여운 영화가 끝나고도 한동안 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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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9일


룻과 보아스
믿음보다 따뜻함이 먼저 느껴졌던 영화였다. 성경에 대해서 잘 아는 이들이라면 룻과 보이스라는 인물에 친숙함을 느낄 수 있다. 처음에는 그러한 사실을 잘 모르고 봤기에 이 영화는 나에게 음악과 사람, 두려움을 안고도 다시 노래하려는 한 여자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음악이 배경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로 느껴졌다 룻이 무대를 떠나 테네시 작은 마을로 내려왔을 때, 음악은 단순히 직업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음악은 도망이고, 동시에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다시 노래할 용기를 내는 장면이 유난히 와닿았다. 가창보다 감정이 먼저 들렸달까 그 한 장면에서 이 영화의 정체가 완전히 드러난다. 사랑은 새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다시 믿는 일 보아스와의 관계도 전형적인 로맨스처럼 급하게 불붙지 않는다. 둘 다 조용히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다. 그래서인지 대사보다 시선이 더 따뜻했고, 음악보다 침묵이 더 크게 느껴졌다. 룻의 이야기는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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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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